
"광주 3·1운동 이끌었던 북문안교회 교인들" 광주제일교회, 3·1운동 행사 【 전남】 100년 전 광주 3.1 운동에 성도들이 참여했던 전남노회 광주제일교회(권대현 목사 시무)는 오는 24일 3·1절 예배를 시작으로 한국교회사 세미나, 논문 발간 등 행사를 개최한다.광주제일교회에서 드리는 3·1절 예배는 독립선언 낭독과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진행한다. 예배에서 2.8 독립선언의 주역으로 알려진 최원순의 증손자 최세운 집사(광주제일교회)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예정이어서 더욱 의미를 더한다.또한 3·1절 관련 행사 기간 광주제일교회 입구에는 12장의 배너가 배치된다. 배너에는 100년 전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한 당시 광주북문안교회 성도들의 사진, 연혁, 활동내역 등이 전시된다. 광주제일교회는 이 배너를 과거 개척한 4개 교회에 보내 함께 기념하기로 했다.3·1절 예배와 함께 광주제일교회는 2월 24일부터 3월 24일까지 4주간 주일 오후 2시 '3·1운동 100주년 한국교회사 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에는 역사신학 교수들과 최흥종 최원순의 손자인 최협 최영훈 교수가 직접 발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세미나는 이치만 교수(장신대)의 '3·1운동속에서의 한국기독교의 역할', 최협 교수(전남대 석좌)의 '민족운동에 함께한 최흥종 목사', 안교성 교수(장신대)의 '3·1운동과 기독교정신', 최영훈 교수(전 조선대 교수)의 '2·8독립선언과 최원순·현덕신' 순으로 진행된다.한편 광주제일교회 부설 광주교회사연구소는 오는 3월 3일 '광주3·1운동과 광주제일교회' 제하의 논문을 발간해 배부할 예정이다. 논문은 한국 최초 교회인 황해도 소래교회 출신들인 안성은 전도사와 막내 딸 김필례와 안성은의 손녀 김함라·김마리아 자매와 광주선교부 최초교회인 광주교회(현, 광주제일교회)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2·8독립선언과 광주3·1운동의 주역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하게 기술했다.광주제일교회 권대현 목사는 "신앙의 선배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역사를 우리가 소중한 유산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며, "특히 그 시대의 그분들이 교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을 보고 오늘날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 시대에 어떤 것을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외에도 광주제일교회 교인들은 신림교회(이전규 목사 시무)가 3월 1일 오방수련원에서 드리는 3·1절 기념예배와 수피아여고가 진행하는 3·1절 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출처] https://www.pckworld.com/article.php?aid=7974556915 한국기독공보 관리자 I 2019-02-21
CBN, 사망 1주기 맞아 ‘빌리 그래함 센터 박물관’ 조명 ▲빌리 그래함 센터 박물관 입구 전경. ⓒCBN 뉴스 보도화면 캡쳐21일(현지시간) 故 빌리 그래함 목사의 사망 1주기를 맞은 가운데, CBN 뉴스가 그의 사역이 담긴 박물관을 조명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사역은 수 많은 미국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고, 전 세계 수 백만 명의 삶을 바꾸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자문을 맡게 되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도자 중 한 명이었다. 일리노이주 휘튼대학교에 위치한 빌리 그래함 센터 박물관에는 그의 사역이 정리돼 있다. CBN에 따르면 처음 박물관을 봉헌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래함 목사는 “이 박물관이 나에 대한 것이 되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빌리 그래함 센터의 에드 스테처 사무총장은 “그래함 목사는 그가 작성한 문서들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원했고, 이 박물관이 그래함 목사의 사역의 어떤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 그러나 더 광범위한 복음전파 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그래서 이것은 미국 전도를 위한 박물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지난 1981년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 문을 연 빌리 그래함 도서관과 이 박물관이 다른 점은 휘튼대학교 내에 있는 빌리 그래함 센터의 일부라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 대학은 전도를 위해 기독교인들을 성장시키고 동원하는데 헌신하고 있으며, 빌리 그래함 목사는 지난 1943년 이 대학교를 졸업했다. 스테처 사무총장은 “빌리 그래함은 휘튼대학교의 가장 유명한 졸업생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와 룻 여사는 휘튼대학교 학생이었고, 이곳에서 만나 결혼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리 그래함 센터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가시적·영적 각성을 준다. 그래함 목사는 이곳에서 예수님의 많은 것을 이뤘다. 우리는 이곳을 졸업한 휘튼대학교의 학생들이 예수님의 많은 일들을 하게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바울, 존 위클리프, 마틴 루터 등 초대 복음전도자들에 대한 설명도 담고 있다. 그래함 목사와 관련해서는 그의 초상화와 전도자로서 개인의 삶에 대한 추억을 담은 사진 등이 헌정돼 있다. 그래함 목사의 수 십년 간 사역 역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스테처 사무총장은 “실제로 이 박물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며 “또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온다. 우리는 이들을 계속해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221 크리스천투데이관리자 I 2019-02-21
“이기풍 목사, 예수님을 믿고 한 사람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김명혁·강승삼 목사 ‘그의 회개 기도와 사랑·섬김 영성’ 대담SHAREMore ▲김명혁 목사와 강승삼 박사(왼쪽부터)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대웅 기자‘이기풍 목사님의 회개의 기도와 사랑과 섬김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와 강승삼 박사(KWMA 공동회장)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김명혁 목사는 매달 한 차례씩 교계 주요 원로들과 신앙의 선배들을 주제로 대담을 열고 있다. 대담은 두 사람의 발표와 이후 토론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강승삼 박사는 네비우스 정책에 따른 한국인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전략을 6가지로 분석하기도 했다 첫째, 이기풍 목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여 그들의 필요(Felt-needs)를 채우는 섬김 사역을 통해 그들에게 진정한 필요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Feal-needs)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그는 농번기에는 항상 농촌의 일을 도왔다. 제주도에서 여자들은 바다 물질을 하므로 밭일은 남자의 몫이었는데, 모자라는 일손을 자신의 노동으로 섬겼다”며 “그는 항상 일복과 농기구를 챙겨서 다녔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제시하는데 돌파구가 됐다”고 했다. 둘째, 이기풍 목사는 제주도 미신의 문화적 인식을 전도의 도구로 삼았다. 그는 “그들이 습관적으로 엽전 돌려 운수를 점치는 게임을 사용, ‘이쪽으로 넘어지면 천국이요 저쪽으로 넘어지면 지옥입니다’ 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설명했다”며 “그렇게 홍순홍이 예수를 믿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셋째, 홍수피해 지역에서 구제 사역과 난민 섬김 사역을 통해 전도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이재수의 난으로 서양종교 배척 상황이 고조되던 제주도에서, 이기풍 목사는 여러 가지 선한 섬기는 일로 칭송을 받았다”며 “홍수로 떠내려가던 사람들 5명을 구조하고 난민구제 사역을 통해 도민들의 칭찬이 자자했고,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다”고 밝혔다. ▲강승삼 박사. ⓒ이대웅 기자넷째, 조롱말을 타고 순회 전도사역을 하며 필요를 섬기면서 복음을 전해 교회를 개척했다. 이기풍 목사는 1년만에 회심자 11명을 얻었다. 이에 대해 “제주 문화를 파악하려 순회하다 초기 ‘말똥 사건’으로 원주민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으나, 마침 경성에서 유배해 제주도에 와 있던 박영효 대감이 이기풍 목사를 지지해 선교 사역에 큰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다섯째, 팀 사역과 남녀 연합 전도사역 섬김을 통해 선교의 결실에 박차를 가했다. 강 박사는 “제주도 여성 사역을 위해 평양여선교회에서 이선광 여전도사를, 숭실대와 숭실중학교는 선교비를 모금해 김형재를 각각 파송했다”며 “성서공회도 매서인 1명을 파송해 팀 사역과 연합 사역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제4회 독노회 보고에 의하면, 3년만에 예배당 3곳과 예배처소 2곳, 성도 160명과 17명이 재학 중인 학교 한 곳을 설립했다”고 보고했다. 여섯째, 성령의 치유 사역과 영적 능력 사역으로 주님을 섬겼다. 그는 “당시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능 판정을 받은 11세 다리 장애인이 이기풍 목사의 7일간 기도로 걷게 됐다”며 “이후 교회에는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고, 성령의 능력과 기도로 축사 사역도 섬긴 결과 교회가 부흥했다”고 했다. 강승삼 박사는 “이기풍 목사님의 사랑은 그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깨닫게 하셨다”며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을 것이다. 이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회개로 인도하셨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 자녀의 권세(요 1:12)를 주셨고, 전도자와 목사, 선교사가 되게 하셨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이기풍 목사님 부부의 17년 제주 선교는 헌신적인 노력과 기도와 섬김의 전략 선교, 그리고 독노회와 전국 교회의 전적 협력이 있었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열매가 열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 “우리 한국교회는 이기풍 목사님의 회개와 기도와 사랑,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섬긴 높은 영성을 닮으려 염원해야 한다”며 “‘죽도록 충성하라’는 계시록 말씀을 생명 다하기까지 지킨 이기풍 목사님의 첫 헌신, 첫 사랑, 첫 섬김의 열정을 되찾아 회개의 영성, 기도의 영성, 사랑의 영성, 그리고 섬기는 영성을 행함으로 순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명혁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은 지난달 나눴던 길선주 목사님과 함께 한국교회를 태동케 한 또 한 분의 ‘한국교회의 아버지’”라며 “지금 한국교회는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해 알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불행한 형편에 처해 있는데, 다음 달에도 신앙의 선배님들 중 한 분인 3.1 운동의 주역 이승훈 선생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먼저 ‘선교사를 때려 눕힌 핍박자’다. 그는 “이 목사님은 평양에서 유명한 깡패 두목이었다. 그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음흉한 계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미워했다”며 “그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마포삼열(마펫) 선교사의 말이 너무나 듣기가 싫어, 그에게 돌을 던져 턱을 부서뜨린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마포삼열 선교사는 그럼에도 이듬해인 1894년 평양에 교회당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기풍은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깡패들을 동원해 건축 현장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그러나 선교사는 분개하는 교인들을 달래며 말렸고, 깡패들을 부드럽게 대했다”며 “회개 후 그는 즉시 마포 삼열 선교사를 찾아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백배 사죄하며 용서를 구했고, 마포 선교사는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기풍은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가 됐고, 깡패가 전도자가 되었다는 소문으로 평양은 발칵 뒤집혔다. 그는 동만 트면 나가서 전도하는 한국의 사도 바울이 됐다. 1903년 평양 신학교에 입학해 훈련을 받고, 1907년 한국교회 최초의 7인 목사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안수를 받았다”며 “마포삼열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은인이었다. 턱에 돌을 맞고서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십자가와 사랑의 복음을 전한 결과 이기풍 목사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 ⓒ이대웅 기자둘째로,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다. 이기풍 목사는 1907년 9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서 마포삼열 목사의 선언에 의하여 우리나라 최초 일곱 분 목사님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안수를 받고, 노회 셋째 날인 9월 19일 제주도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김명혁 목사는 “이 목사님은 자신이 그랬듯 흑암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며 복음의 빚을 갚고 사도 바울의 발걸음을 따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며 “중간에 마음이 약해져 주저하기도 했지만, 윤함애 사모의 격려가 힘이 돼 이듬해인 1908년 아기를 등에 업고 떠났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했던 경험을 모조리 한 것 같았습니다. 13년 동안 제주도 사역을 통해 제주도에서 사탄 마귀의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게 했다”며 “3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고, 1934년 제주도 독노회를 조직하게 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새벽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면서 회개기도를 처절하게 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기풍 목사님의 성공적인 선교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기도와 사랑과 섬김의 수고가 있었다. 윤함애 사모님은 기도의 여인, 사랑과 섬김의 여인이었다”며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도민들을 돌봐줬다.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아보았다”고 했다. 셋째로, ‘신사참배를 반대한 순교자’이다. 그는 “이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평생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다, 마지막에는 순교의 길로 걸어갔다”며 “제주도 사역 후에는 전라도 복음화를 위해 남은 생애를 바쳤다. 평양 출신으로 이방과 같은 제주도와 전라도에 가서 평생 복음을 전한 것은 사도 바울과 같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명혁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은 과감히 일어나 일제에 대항해 한국교회를 지켰다. 1936년을 기점으로 강요당한 신사참배에 정면으로 맞서서 투쟁했다”며 “일제는 그를 ‘미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1938년 체포해 순천 감옥에 투옥하고 갖은 고문을 가했다. 칠순의 노구로 당한 일경의 취조와 고문은 견디기 힘들었고, 광주형무소로 이감되는 도중 쓰러져 1942년 6월 20일 77세를 일기로 순교의 제물로 드려졌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의 삶을 돌아보면서, 한 사람의 생애와 운명이 예수님을 믿어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또 한 번 발견합니다. 기질도 습관도 운명도 완전히 바뀔 수 있다”며 “그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해 제주도 도민은 물론, 민족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 우리들의 운명이 바뀐 것은 길선주·이기풍 목사님과 같은 분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핍박자가 전도자로 바뀐 사도 바울의 변화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님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또 표할 수밖에 없다”며 “부족한 우리들도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본받고, 이기풍 목사님께서 물려주신 ‘회개와 기도와 사랑과 섬김의 영적 유산’을 지니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213 크리스천투데이관리자 I 2019-02-21
불임부부간증으로 유명한 박경환 집사 ‘오병이어의 기적’ 붕어빵 복음전도 실천 ▲불임부부간증으로 유명한 박경환 집사(잠실하늘비전교회) '오병이어의 기적' 붕어빵 노상전도를 펼치고 있다.잠실 하늘비전교회(담임 오영택 목사) 성도인 박경환 집사는 불임부부임에도 간절한 기도로 불임을 극복한 크리스천이다. 여러 교회 부흥회 초청강연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이번에는 성경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도폭발로 실천하겠다고 붕어빵마차를 손수 만들어 노상으로 나섰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란 가마니전도, 고구마전도, 파라솔 전도 등을 혼합한 다목적 전도 방법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나눔과 섬김으로 붕어빵과 따뜻한 차를 무료로 제공하며 매일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낮에는 오후1시부터 붕어빵 전도를 한다. 야간에는 오후7시부터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소 앞에서 붕어빵 전도 및 하늘비전 안전지킴이라는 도우미 섬김으로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늦게 귀가하는 자녀들의 안전지킴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반응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구원마차 오병이어의 기적’ 붕어빵마차 전도 지역 사회에서 큰 관심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하늘비전교회 박경환 집사는 개인 사비를 털어 붕어빵마차 ‘구원마차 오병이어의기적’이라는 문구를 새긴 마차를 끌고 매일 오후1시부터 특이한 빨간색 붕어빵으로 노방전도를 실천하고 있다. 붕어빵에는 비트를 넣어 빨간색 반죽을 만들고 앙금은 고구마 앙금을 넣어 기존에 붕어빵과는 완전한 차별화 전략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 빨간 붕어빵을 함께 나누며 예수님 복음을 전한다. 모든 크리스천의 꿈이자 희망인 복음전도, 선교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박경환 집사는 크리스천들에게 복음전도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214 크리스천투데이 관리자 I 2019-02-21
“구약의 ‘아이성’ 실제 위치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 스캇 스트리플링 박사 고고학 팀 주장SHAREMore ▲예루살렘 전경(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Pixabay고고학자들이 구약 성서 속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곳 중 하나인 아이성으로 추측되는 장소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스푸트니크뉴스, 익스프레스 등 외신들은 이들이 여호수아서의 기록을 토대로 아이성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스푸트니크뉴스에 따르면 스캇 스트리플링(Scott Stripling) 박사가 이끄는 고고학자 팀은 몇 년 동안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현장을 발굴해 왔다. 발굴 작업은 ABR(Absolute for Biblical Research)의 후원하에 진행됐다. ABR은 성경과 고고학이라는 두 연구 분야를 상호 발전시키기 위해 세워진 기독교 단체다. 스트리플링 박사는 "'인티파다'(Intifada;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편집자주)로 인해 8년간 쉰 기간을 포함해 14년간 발굴작업을 계속 해왔다"면서 "끊임없는 파괴 행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하여 드디어 완료했다"고 밝혔다. 가나안 도시 아이성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은 종전에 이 도시의 폐허가 웨스트뱅크에 위치한 엘-텔(El-Tell)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스트라이핑 박사과 그의 동료들은 성경 속에서 그 위치에 대한 힌트를 파악하고 '키르벳 엘-마카티르(Khirbet el-Maqatir)'가 아이성 전투 장소였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이핑 박사에 따르면 성서 기록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도시의 서쪽에 매복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곳은 '와디 션반'(Wadi Sheban)으로 추측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올해 말 연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203 크리스천투데이관리자 I 2019-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