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한준 칼럼2] 겨울은 봄을 준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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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봄을 준비했다!
《예기》에는 “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배우고 난 이후에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 본 이후에야 곤혹스러움을 안다고 했다. 배움과 가르침은 별개가 아니다.
요즘 세대들은 인터넷과 손바닥안의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보고 통한다. SNS에서는 펄펄 날아도 가까운 사람과는 얼굴을 맞대고 갈등 상황을 돌파하거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질문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불편해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림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대하는 상대 표정속에 자신의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 마음이다.
일전에 흥행했던 영화《사도》에서는 영조 부자의 정신질환 증상까지 그린 사도세자의 비극을 아버지와 아들사이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극중 묘사된 영조의 강박증, 세자의 불안신경증 등이 사태 악화에 일조했다는 암시를 준다. 가르치는 영조는 아들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그리고 배우는 세자는 아버지에 대한 공포 및 불만지수가 상당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어려움이다. 가르침에 수준을 너무 높이지 말고 그가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배움의 흥미를 줄 수 있다. 가르침은 눈높이로 하고, 배움은 마음의 깊이로 한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램 차란(Ram Charan, 1939년~)은 모든 정보가 열려 있는 이 시대 지혜로운 자질중 하나를 ‘겸손한 듣기’를 꼽았다. 이러한 경청은 내가 가진 것과 상대의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끈이다. 새로운 세상과 탁월한 아이디어에 자신을 접속시키는 패스워드다. 배움의 인내와 가르침의 관용이 필요하다. 이제는 들어야 들린다.
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 강의를 준비하면서 ‘배움은 꿈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은 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새긴다. 이 시대는 교수나 교사가 정보의 원천은 아니다. 정보 수집 방식이 상당히 효율적이고 분산적이며 다양화되어 있다. 그리고 스스로 학습자이고 학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목적이 있는 학습자’다. 목적 있는 학습자야말로 강력한 능력이다. 목적 없는 학습자들은 주입식에 수동적인 학습자 형태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약한 학습자’다. 지금이 힘써 배워야 할 때이다. 강력한 학습자는 목표가 있는 학습자이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학습자가 이해하면, 동기 유발 면에서나 참여도에 있어서 달라진다. 학습자의 태도가 상당히 중요하다.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이자 최고기술경영자 폴 킴Paul Kim 교수가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좋은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근사록》의 말로 정리하고자 한다. “學原於思” 배움은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흔히 우리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 그것으로 도리를 분명하게 알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명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문제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참다운 배움이 아니다.
지난해 울창했던 나뭇잎을 다 떨구고 조용히 눈보라를 이겨낸 산등성이의 나목도, 바위사이에서 얼었던 계곡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도 들어보자. 이제 겨우내 준비해 둔 생각들을 꺼내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자.
<글: 양한준 교수> -(현)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방사선학과 교수 -(현) 대한방사선과학회 부회장 대한디지털의료영상기술학회 부회장 -1997.9. - 2009.2. 을지대학교 방사선학과 교수 -명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과 (이학박사) -충남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보건학석사) -저서 "고전명전" -E-MAIL: hanjoon61@gmail.com
[이미지 출처] google search; 봄, http://blog.koreadaily.com/jonghuh825/100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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