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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칼럼5] 파랑의 심리학1
  • 작 성 자 : 관리자
  • 작 성 일 :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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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전하는 말-죽을힘은 하늘에서 온다.

 


 

윤동주 서시와 아리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 27세의 나이에 그의 육체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하나라고 했던가. 그의 영혼은 순수했기에 그는 순수한 영혼이 가는 파란 하늘로 돌아갔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으로 인체에서는 다섯 번째 부위인 목과 연결되어 있다. 목은 목숨이 붙어 있는 곳으로 몸통과 머리를 연결하는 부위이다. 한의학은 사람의 구조를 ‘정(몸)’과 ‘기(마음)’ ‘신(얼)’으로 보았다. 언젠가 한번은 신을 찾아 목숨이라는 강을 건너야 한다. 그래서 목은 다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을 향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시험하는 다리가 바로 인간의 목이다. 그래서 옛 우리 선현들은 이런 상황을 바로 도(道)라고 표현했다. 道라는 글자를 풀이해보면 머리 수首 자에 칼 도방 변을 써서 바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리를 위해서는 변절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신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가가 바로 도의 관건이다.

 

많은 사람이 육체의 죽음이 두려워 변절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어떤 힘으로 그 두려움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을까? 바로 하늘에서 오는 파란색의 힘이 그 일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윤동주는 파란 하늘을 그렇게 우러러 보았던 것이다.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밤! 그에게 주어진 길(道)이란 무엇이었을까? 바로 목을 하늘에 바치는 일! 예견이나 한 것처럼 <십자가>란 그의 시는 목을 받치는 죽음을 암시한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백성에게 있어서 국가는 신의 존재이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의 존재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자신의 목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들은 하늘로 올라간 존재들이 되어 아직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존경도 받지 못하면서도 목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조선 왕조 수백 년 동안 폭정에 항거하여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 중에는 산적도 있고 일반 죄수도 있었다. 역모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맞는 신하도 있었고 실지로 왕조를 엎으려는 반역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폭정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천민들이었다. 이들은 파리 목숨처럼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렇게 이들이 처형된 곳이 바로 아리랑 고개였다. 

 


 

기록에 따르면 서울 돈암동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리랑 고개라 한다. 그 고개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중 굵은 가지 옹이에 밧줄을 메달아 놓고 죄수들을 목 메달아 처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죽음의 고개를 넘던 젊은이가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고개를 올라가다가 전승되어 내려오던 슬픔과 절망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이 바로 아리랑이다. 지켜보던 백성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노래를 가슴으로 들었고 후에 역경의 고비마다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이 노래에 실어 불렀다. 그리하여 아리랑은 슬픈 백성의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강산만 살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삼천리강산도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이란 소설을 쓴 미국의 작가 님 웨일즈는 “이 노래는 삶의 노래가 아니라 죽음의 노래이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바로 수많은 죽음 가운에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개란 무엇인가? 고개는 산을 모태로 한다. 산이 유달리 많은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산을 신성시했다. 강화도 마니산이나 태백산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참성단과 천제단을 쌓아 신성시했다. 그러나 그 산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곳이 고개이다.

 

고개는 그 너머의 다른 미지의 세계로 가는 통로이고 참과 진리로 가는 길목이기에 사람들은 고개 마루에 서낭당을 세워 신성시했고, 장승을 세우거나 돌탑을 쌓아 넘어갈 때마다 안녕을 빌곤 했다. 이 고개가 바로 몸에서는 목이다. 가슴과 머리를 이어주는 목은 바로 삶의 역경고개!

인생에는 여러 가지 고비를 만난다. 그 고비가 바로 고개이다. 그래 고개를 숙여 자신을 움츠려야 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살아 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아니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작정하고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면 어느새 목에 밧줄이 걸리고 고개를 오르게 되니 그 고개가 아리랑 고개이다.

 

고개를 숙이는 일은 얼이 있는 어른에게만 하는 예절이었다. 얼이 없는 짐승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치욕이었다. 그랬기에 겨레의 얼을 빼앗기 위해 강압된 신사참배가 아리랑 고개였고, 창씨개명이 아리랑 고개였다. 그리하여 아리랑 고개는 저승고개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로 표현했다. 시련과 고난의 연속인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12라는 수는 12지(十二支)와 열두 달을 상징하는 수자로, 우리 민족이 얼을 지키기 위해 넘어야 할 열 두 고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절망의 12고개를 넘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정선지방의 아리랑에서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란 가사대신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라고 애걸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개를 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 박광수 교수>

-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 )부산 카톨릭 간호대학원 외래교수

- )대전대학교뷰티건강학과 외래교수

- )장로회 자연치유 선교대학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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