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칼럼 8] 남색의 심리학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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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이 전하는 말-진리를 위해 산다.
심청과 인당수
대명 성화연간 남군 땅에 사는 심현과 정씨부인이 뒤늦게 딸 심청을 낳았다. 심청이 세 살 되던 해 정씨 부인이 죽고, 심현은 눈 먼 봉사가 되었다. 심청이 자라 아버지를 부양했다. 사람들이 이 앞 못보는 심현을 ‘심봉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딸을 마중 나가던 심현이 물에 빠졌는데 개법당 화주승化主僧이 구해주었다. 심현은 고마워하며 눈을 뜨는 대가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했다. 심청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배 타는 남경상인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받친다. 자신의 육체를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를 위해 바친 것이다. 판소리 가사를 음미해 보자.
한 곳을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印塘水)라. 대천(大川)바다 한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나 남고. 사면(四面)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적막(天地寂莫)한데, 까치뉘 떠 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물결은 위르르, 출렁 출렁. 도사공(都沙工) 영좌이하(領坐以下), 황황급급(遑遑急急)하여, 고사지제(告祀之祭)를 차릴 제, ------중략---- 고사를 다 지낸 후, 심낭자 물에 들라. 성화같이 재촉하니, 심청이 죽으란, 말을 듣더니마는 여보시오 선인(船人)님네. 도화동(桃花洞)쪽이 어디쯤이나 있소. 도사공이 나서더니, 손을 들어서 가르치는데, 도화동(桃花洞)이 저기 운애(雲靄)만 자욱한 데가 도화동(桃花洞)이요.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정화수(井華水) 떠 받쳐 놓고, 분향사배(焚香四拜) 우는 말이, 아이고 아버지, 이제는 하릴없이 죽사오니, 아버지는 어서 눈을 떠,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칠십생남(七十生男) 하옵소서.
심청이 몸을 던진 곳은 인당수(印塘水)! 우리 몸에서는 인단소로 상단전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 상단전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치면 지성소에 해당하는 곳. 이 지성소엔 오로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하루 출입이 허용된 영적이고 신성한 곳이다.
심청전에서 그 곳을 용궁이라 표현했다. 그곳에서 심청은 용왕으로부터 전생의 일과 앞으로 운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용궁에서 어머니를 만난 뒤, 다시 인당수 바다에 이른다. 이때 남경상인들이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인당수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해 이를 왕에게 바쳤는데, 왕은 연꽃 속에서 심청을 발견하고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심청은 왕을 도와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했고 맹인잔치를 열도록 권한다. 이웃 노부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가던 심봉사도 이 잔치에 참석해 심청을 다시 만나게 되고, 딸을 만난 기쁨에 눈을 뜨게 된다.
판소리로 잘 알려진 심청전은 바로 깊을 深 푸를 靑이라는 이름에서도 암시하듯이 깊은 바다 인당수에 몸을 던져 육체의 강을 건넌다. 영적 세계에서 보면 심청이 왕비가 되었으니 도를 깨달아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심청전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뜻은 무엇일까? 바로 육체의 안락을 포기할 때 영안이 열리게 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남색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쪽빛 바다이다. 바다는 지구 땅 위를 덮고 있으며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바다는 인체에서 미간에 위치하며 남색에너지가 조절한다. 이를 미간에너지라 부른다.
미간에너지는 뇌와 직접적 연결되었다. 상징하는 정신영역은 깨달음과 해탈에 관여한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본능과 마음의 초월의식을 넘어선 새로운 의식 영역이다.
미간 에너지가 관할하고 있는 부위는 얼굴이다. 얼굴의 본뜻은 얼이 들어 있는 굴이란 뜻이다. 얼이란 인간 속에 내재된 신성(神性)으로 바다의 남색과 공명한다. 남색은 인체에선 심포, 즉 ‘마음보’라 불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를 표현하는 색이다. 남색은 깨달음을 이끈다.
심청(深靑)전은 효심을 강조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각도에서 보면 한 인간의 구도소설이 된다.
부모는 자신을 나아준 신성한 존재다. 부모 없이 태어난 생명이 없기에 부모는 바로 신과 같이 고귀하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님에게 불효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에게만 정성을 드린다. 소설 속에서 부모님을 위하여 헌신한 이 심청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도나 수행을 닦는 종교인들 대부분도 쉽사리 육체를 포기하지 못한다. 단순하게 심청처럼 아버지를 위해 육체를 포기하면 영적인 단계로 진입한다는 쉬운 진리가 놓여있다. 하지만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버린 뜻도 모른 채 이런 심청이가 불쌍하다고 노래만 부르고 있다.
어이하나 어이하나 이 일을 어이하나 불쌍한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고 푸른 물 인당수는 물결만 출렁이네.
인당수는 남색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이다.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없어지고 정과 사의 기준도 없다. 그저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간이 이런 경지에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히말라야의 성자들》(정신세계사 출간)이란 책 속에서 스와미 라마는 비비지라는 성자를 만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신성과 하나가 되려면 세속을 떠나서 신과 맺어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너무도 쉬운 거란다. 너의 영혼을 신께 바쳐버린다면, 해야 할 것과 더 깨달아야 할 것은 없단다."
나는 다시 물었다. "비비지, 그렇지만 어떻게요?"
내가 신을 만나러 갔을 때 그분은 이렇게 물으셨다. "내 성소 입구에 서 있는 자가 누구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증거를 댈 수가 있느냐?"
"여기 두 손으로 받든 저의 가슴과 글썽이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자 신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받겠노라. 나 또한 그대를 사랑하며, 그대는 내 사람이로다."
<글 : 박광수 교수> - 전)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 전)부산 카톨릭 간호대학원 외래교수 - 전)대전대학교뷰티건강학과 외래교수 - 전)장로회 자연치유 선교대학원 외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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