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칼럼6] 파랑의 심리학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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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하늘은 자비로워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역경을 이겨내라고 파란색을 펼쳐 놓았다. 애통하며 길 떠나는 그들의 눈에 평화의 색깔을 하늘 가득 담아 놓은 것이다. 그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힘을 내어 험한 세상의 물결을 잘 건너라고 다리를 놓아 주었다. 1970년 1월 26일 히피로 대변되던 60년대 사회에 심금을 울리는 노래 한 곡이 들려 왔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듀오로 평가받는 사이먼 앤 가펑클은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스펠적 사상과 음률을 가지고 세상을 감동시켰다. 이들이 겪은 60년대는 체제와 사상을 탈피하고자 하는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전과 평화의 노래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랬기에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오히려 사치로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가슴 속에 묻어 놓고 있었다. 이런 때 험한 세파에 다리가 되어 준다는 노래는 아픔을 치료하는 묘약이자 평안을 주는 하늘의 말씀이었고 빛이었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Simon & Garfunkle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 will dry them all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 repeat * 당신이 지치고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그 눈물을 말려 드리겠습니다. 살기 힘들고 친구도 찾아볼 수 없을 때 내가 당신의 편이 돼 드리겠습니다.(당신 곁에 머무르겠습니다.) 마치 거친 풍랑 속에서도 버텨내는 다리처럼 나를 눕혀 당신이 무사히 잘 건너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When you're down and out When you're on the street When evening falls so hard I will comfort you I'll take your part oh when darkness comes and pain is all around * repeat twice * 당신이 너무나도 지쳐서 완전히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때 당신이 할 일을 잃고 길거리를 헤맬 때 당신이 해가 지고 밤을 맞이하기가 괴롭게 느껴질 때 내가 당신을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고통이 온 사방에 퍼져있을 때 당신의 짐을 내가 대신 들어 드리겠습니다.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Your time has come to shine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See how they shine
은빛으로 물든 내 여성이여 계속 항해를 하세요. 당신의 시대가 빛을 발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모든 꿈들이 이제 서서히 실현돼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보세요.
Oh if you need a friend I'll sailing right behi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ll ease your mind** ** repeat **
아! 그대가 만일 친구를 필요로 한다면 내가 바로 당신 바로 뒤에서 항해 할 터이니 마치 험한 풍랑위에 우뚝 선 다리처럼 내가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폴 사이먼(Paul Simon)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70년 2월부터 히트해 1위가 되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1970년도 그래미상의 ‘Record Of The Year’, ‘Album Of The Year’, ‘Song Of The Year’와, 최우수 컨템퍼러리 가곡, 최우수 반주 편곡 등의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리고는 전 세계에 퍼져 개인의 아픔과 고난을 위로해 주는 노래가 되어 현재까지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폴 사이먼의 노래처럼 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하늘같은 사람일 것이다. 하늘의 뜻에 따라 생명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늘의 색깔인 파랑이 상징하는 정신영역은 신을 따르는 인간의 의지를 담당한다. 그러기에 파랑과 연결된 목 에너지가 강하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은 하늘이 이끄는 선택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이는 가슴에서 겪은 사랑의 아픔이나 상처도 신의 인도로 말미암아 더 좋은 결과로 이끈다는 믿음으로 인한다. 그러나 이곳이 막혀 있으면 죽음이 두려워 변절하게 되어 다시 낮은 에너지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도 인간은 나약하여 목숨이 두려워 그 스승을 배반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베드로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베드로에게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은 오히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예수가 잡히자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수제자인 베드로 역시 하녀의 지적에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를 따르겠다던 베드로는 예수가 잡히는 상황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만 했어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늘의 평화를 얻었을 터인데도 깨어있지 못했기에 두려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다. 하늘을 보는 그 단순한 행위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피카소와 목구멍 우리 속담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포도청은 지금의 경찰서이다. 죄가 없어도 거기에만 끌려가면 꼼짝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 만큼 포도청은 무서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 포도청만큼 무서운 곳이 바로 목구멍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은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항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명제이다. 인간의 육체는 먹어야 살기에 먹는 것 앞에서는 체면이나 양심 같은 것도 팽개치고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인 피카소 역시 목구멍이 가장 무서운 시절을 만난다.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지만 예술가에게 가난은 남들이 받는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미처 예술을 그만 두고 목구멍을 위해 다른 일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예술가들에겐 예술이 천명(天命)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들은 그림을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탐색을 끊이지 않는다.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9세가 되던 1900년 자신이 단골로 다니던 바르셀로나의 선술집 ‘네 마리 고양이’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어두운 선술집 벽 위에 그는 데생 150여 점을 전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자 친구인 카를로스 카사게마스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떠나 화가들의 도시인 파리로 간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은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렉 등의 화가들이 살았던 곳으로 언덕 위에 ‘바토-라부아르’라는 건물이 있다. 그 건물 안에 30여 명의 화가들의 작업실인 아틀리에가 있다. 계단은 낡아 삐걱거리고, 물도 편하게 쓸 수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습기로 가득 찬 그 건물에는 쥐와 고양이 오줌냄새로 가득하다. 참혹하리만큼 가난한 생활이 눈앞의 현실이었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그의 친구 카사게마스가 실연을 당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기 머리를 권총으로 쏴 자살하는 것을 목격한다.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곧 그림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른바 청색시대이다. 1901년부터 4년 간 피카소는 청색만으로 세상을 그렸다. 그에게 있어 청색은 목구멍의 색깔이었다. 사는 것이 무서워 자신을 도피하고자 했던 색깔이었고 세상을 향한 분노를 소리치기 위한 색깔이었다. 그의 생각을 대변하듯이 당시는 세기말의 영향으로 페시미즘 적이고 고뇌주의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심히 청색만을 보여줄 뿐 이었다. 그는 옷도 청색으로 입었고 모든 사람들을 청색으로 그려냈다. 늙은 뚜쟁이, 알코올 중독자, 거지, 장님, 그리고 친구 카사게마스, 그리고 절망과 가난에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군상들이 청색으로 표현되었다. 캔버스에서나마 하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청색시대를 열은 것이다. 그 청색이 바로 하늘의 색이다. 가난과 분노의 색이자 하늘의 도움을 바라는 하늘의 색이다. 피카소는 이미 하늘로 돌아갔지만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던 가난과 절망의 청색시대는 여전히 이 땅에서 가난한자들의 목을 누르고 있다.
여기 가난 속에서도 신을 위하여 등불을 켠 가난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난다"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코살라국 사위성에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을 본 여인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온다 하여 이 나라의 왕이 오늘 밤에 수천 개의 등불을 밝혀 복을 비는 연등회를 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성안이 북적거립니다.“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생각했다. 왕은 많은 복을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했으면 싶은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여인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했다. 동전 두 닢으로 기름을 사러 온 여인을 보고 기름집 주인은 이 기름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가난해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으니 등불이라도 하나 켜서 부처님께 바칠까 합니다.“ 여인의 말에 감동한 가게 주인은 기름을 곱절이나 주었다. 여인은 그 기름으로 불을 켜 길목에 걸어두고 마음속으로 발원하였다. “저는 가난한 처지라 이 작은 등불이나마 부처님께 공양 하니 받아주옵소서" 그날 밤 사위성에는 강한 비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서 초저녁에 켜 놓았던 등불이 모두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작은 등불 하나만은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어둠속에서 더욱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가난한 여인 난다가 켜 놓은 작은 등불이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시자인 아난다는 손으로 불을 끄려고 했다. 그러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가사 자락으로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았다. 부채로 끄려 했지만, 그래도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이 그 모습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부질없이 애쓰지 말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므로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등불의 공덕으로 여인은 다음 세상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며, 그 이름은 수미등광여래라 하리라.“ 예수 역시 부자들이 내는 헌금과 가난한 과부가 내는 헌금에 대해 설교하면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자신이 먹을 것을 먹지 않고 헌금한다는 것은 신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심이란 바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낼까? 바로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파란색이 말하고자 하는 헌신의 뜻을 즉시 깨달을 수 있다. 이럴 때 자신의 의지를 신의 의지에 맞추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의 기도이다. 이렇게 신에게 귀의하려면 자신의 판단이나 선택을 자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선택한다면 신성이 개입할 틈이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 이르면 판단하지 않게 되어, 판단에 따르는 두려움이나 실수가 없어 매사를 신의 뜻에 맡기고 따른다. 인도의 3대 성인의 한 사람인 라마크리슈나는 신의 의지에 따르는 길을 비유를 통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원숭이 새끼는 무서울 때 어미원숭이에게 꼭 매달린다. 새끼는 어미를 놓치게 되면 떨어져서 다치게 될 까봐 떨어지지 않으려 모든 힘을 쓴다. 그러나 고양이 새끼는 가련하게 울기만 한다. 그러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의 울음소리를 듣고 와서 뒷덜미를 물고 간다. 고양이 새끼는 떨어질 위험이 전혀 없다. 엄마 고양이가 그 자신의 뒷덜미를 물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의지에 전적으로 내맡기는 신앙의 길이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신에게 맞기고 신의 의지를 따를 때 그 힘은 하늘에서 오며 색깔은 평화와 평강의 파란색이다.
<글 : 박광수 교수> - 전)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 전)부산 카톨릭 간호대학원 외래교수 - 전)대전대학교뷰티건강학과 외래교수 - 전)장로회 자연치유 선교대학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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