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칼럼7] 파랑의 심리학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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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신의 주신 임무
신의 의지를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 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롤랑 조페 감독이 만든 영화 <미션>이다. 1750년, 스페인과 포루투갈은 남미 오지에 있는 그들의 영토 경계 문제로 합의를 보았으나 유럽 한구석의 탁자 위에서 그은 선이 원주민 과라니족 인디언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일으킬 지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문명과 종교라는 이중 가면을 쓴 군상들로 침략과 전쟁이 주된 관심사 였다.
영화는 남미의 오지에 있는 과라니(Guarani)족을 선교하기 위해 간 신부 한명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이과수 폭포에서 떨어지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장엄한 이과수 폭포는 그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인간 생명을 밀어내고 있었다. 앞서간 신부들의 절망적인 실패소식에도 불구하고 제수이트(Jesuit)회의 신부인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이과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내 폭포를 올라간 그는 품에서 오보에를 꺼내든다. 그리고 들려오는 천상의 멜로디는 외부인에 대한 공포심과 증오, 적개심을 사랑으로 바꾸었고 마침내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는다. 음악이 하늘의 소리이고 칼이 땅의 무기라면 음악은 칼보다 강하다. 가브리엘 신부는 오보에가 내는 음악으로 그들과 함께 동거 동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 또 한명의 신부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칼과 갑옷 등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이과수폭포를 오른다. 노예상인이었던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는 그의 연인이 친동생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고는 분노에 사로잡혀 친동생을 죽이고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가브리엘>신부는 신의 사랑을 전했고 참회의 나날을 보내다가 헌신의 마음으로 가브리엘 신부가 간 오지를 찾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의 죗값을 모조리 갚으려는 듯 자신에게 혹독할 정도의 고통을 주며 헌신의 길을 간다. “산을 옮길 만한 강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 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로드리고는 사도바울이 써 놓은 사랑의 메시지를 읽으며 신께 헌신의 마음을 다진다.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새로운 영토분계선 때문에 과라니족의 마을은 포르투갈 령(領)으로 바뀌게 되고 쫓아내려는 이들에 불복하여 그들은 최후의 싸움을 준비한다. 무저항 비폭력으로 맞서는 <가브리엘> 신부는 “무력이 옳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다.”고 설득하나, 폭력에는 폭력으로 저항하겠다며 <로드리고>는 결사항전을 외친다. 결국 과라니 족과 이들은 몰살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살아남은 원주민 아이들은 배를 타고 떠나가면서 바닥에 있는 칼과 바이올린 중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장면이다. 이들에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 앞에서 한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예수회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던 주교는 보고서를 쓰는데 그의 편지글의 마지막 구절이 그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영혼은 다시 살아날 것이며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목은 소통과 대화의 창구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과 함께하면 마치 어머니로부터 사랑받거나 보호받는 듯이 느낀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봉사하는 삶을 산다. 평화, 확 트임, 긴장 이완, 치료의 느낌을 이런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파랑의 유연하고 조용한 힘이 그 원천이다. 파랑색은 무지갯빛 몸에서 목 부위와 공명하므로 파란색을 접하면 대화할 때 긴장하지 않고 침착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대화가 원활해진다. 온화하고 깊은 관용과 자비심을 가지고 있고 양심적이고 책임감이 강하여 정신적인 리더가 된다.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큰 신용과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파란색 조화가 깨진 사람은 타인을 지배하려 하는 마음이 강하다. 반대로 우월한 사람에게는 항상 복종한다.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변하려 하지 않고 전통에 집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도 한다. 항상 규율과 감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완강한 권위주의적인 과거 아버지 모습이 비춰진다. 약자일 경우에는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워 목에 할 말을 담고 있지만 권위에 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지 못한다. 바로 기가 막혀서 그렇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여선생이 있었다. 이 선생은 수업을 할 때나 대화를 할 때 항시 잔기침을 하였다. 여고시절부터 시작되어 20여년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 목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담겨 답답함을 기침으로 내보내려는 결과였다. 이 선생님은 여고 3학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대학을 선택하여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송두리째 꺾인 것이다.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미대에 진학하려 하였으나 아버지는 반대였다. 화가가 되어서 어떻게 밥을 먹고 살겠느냐가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선생은 꿈을 포기 하지 않고 미대에 진학하기를 주장하였다. 단식을 감행했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아버지와 대립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이길 딸이 얼마나 있을까? 이 선생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몸도 죽을 것처럼 그녀를 아프게 했다. 특히 기침은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심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이 선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교대에 진학했고 졸업하자 선생이 되어 혼인도 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때 앓았던 감기의 후유증인 기침은 그녀를 평생 따라 다니는 고통이 되었다. 목 에너지가 손상을 입었는데 복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던 필자는 그 선생에게 지금이라도 아버지와 막혔던 꿈에 대한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필자는 아버지의 육체는 땅에 묻혔지만 그 영혼은 여전히 선생님 마음 안에 존재하며, 날을 정해 조용한 방에서 아버지를 마음에서 불러내 대화하라고 했다. 선생은 한 밤 중 가족 모두가 잠든 사이에 골방으로 가서 마음 속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에서 나오자마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며 가슴 속에서 물결처럼 번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그 때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좌절 시킨 것이 아니라 딸의 미래를 걱정하였던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것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사랑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선생은 가슴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눈물로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다. 편안히 잠을 자고 났던 이 선생은 바쁜 출근 전쟁을 치른 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문득 자신이 더 이상 잔기침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막혀 있던 목의 기운이 뚫어진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의 기운이 사랑으로 바뀌어 목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목의 기운이 막힌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하여 자주 분노를 발하며 소리를 잘 지른다. 명치끝이 단단해 지고 좌측 옆구리 아래에 딱딱한 느낌이 든다. 눈이 충혈 되고 입이 쓰고 갈증이 나거나 신트림이 올라온다. 몸을 이리 저리 뒤척이며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놀라 깬다. 화가 났을 때는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하늘아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영어단어 중에 liverish 란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흥분하기 쉽고 분노로 가득 찬이란 형용사이다. 간이란 단어 liver에 ish 를 붙여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러므로 간은 분노 성냄 그것으로 인한 폭력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니 부인들은 남편들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남편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낸다면, 맞서지 말고 ‘우리 남편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하고 이해하면 가정이 평화로울 것이고, 남편들도 부인이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왜 허구한 날 시키기만 해요.’라고 하면 부인의 간덩이도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간의 기능을 조화롭게 고치는 일이다.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세상살이가 다 덧없음을 깨닫게 되어,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한 솔로몬의 지혜를 상기하게 된다.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는 솔로몬은 신을 향해 일천 번이나 제사를 드렸던 인물로 바로 이 목 에너지의 힘을 입어 신성으로 귀의하게 된다.
복잡한 현실 세계는 진리를 멀리하고 돈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목숨만을 위해 살고 있다. 의식 없이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 음식, 옷, 집과 가구 등등의 것에만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삶이다. 그런 삶은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그 목적을 생각해 볼 기회조차 앗아간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생명을 피워내는 봄인 4월이 오히려 잔인한 계절이 되는 것이다. 신이 되지 못해 시인이 되었다는 말처럼 시인들은 이러한 인간의 황폐함을 시어를 빌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그 대표적인 시인이 T. S. Eliot이다. 그는 전후 서구 문명의 황폐함을 보고 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고 나팔을 불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 (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중략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데려갔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페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엘리엇은 이렇게 나팔을 분 대가로 노벨 문학상을 탔지만 세상은 여전히 황무지이다. 그리고 그 땅에는 생로병사의 고통이 항시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그 어둠의 그림자가 갓난아기에게도 들어가니 신생아 황달이다. 황달을 치료하는 파란색광선 어머니의 뱃속에서 10달이란 세월은 짧은 기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가진 어머니의 삶이 불행하다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거기에 세상에 나오기 위해선 어머니의 몸에 붙은 탯줄을 놓아야 하는데 그 두려움은 어땠을까? 그래 신생아의 간 기능은 두려움에 쓸개즙을 역류시키는데 그 병이 바로 황달이다. 영국의 크레머라는 의사가 관광도 하고 쉴 겸 인도를 방문하였다. 그는 인도라는 나라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문화나 문명이 발전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자신이 의사였기에 의학에 대해선 인도의 의학을 기대하지 않았다. 인도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인도의 후진성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특히 불결하게 음식을 손으로 먹을 뿐 만 아니라 그 다른 손으로는 항문을 씻어내는 것을 보고는 어이없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시골마을을 여행하던 중 그는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바로 마당 한가운데에 갓 태어난 갓난아이를 눈만 가린 다음 벌거벗긴 채로 거적위에 놓은 것을 발견했다. 크레머는 집 주인에게 왜 갓난아이를 그렇게 학대하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말은 아이가 황달에 걸려 치료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크레머는 어이없어했다. 그는 아이 부모에게 황달의 위험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이렇게 하면 황달이 치료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돌아선 크레머는 다시 발길을 돌며 여행을 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도 역시 신생아 황달을 치료하는 방법이 똑같음을 보고는 인도의 의학이 아직도 미개한 수준이라며 안타까워 혀를 찾다. 여행중 크레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첫 번째 방문했던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크래머는 깜짝 놀랐다.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그 신생아가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크레머는 황당한 마음으로 그가 지나왔던 마을을 다시 찾아가 살펴보니 결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모두 살아있었다. 급히 영국으로 돌아온 크레머는 이번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고민하던 그는 태양광선이 황달을 치료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무지갯빛 가시광선을 하나하나 황달에 걸린 아이를 쬐어보았다.
당시 영국에선 황달에 걸린 아이들이 치료가 되지 않고 악화될 때는 새 피를 수혈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피를 갈았으나 큰 효과가 없이 죽곤 했다. 그랬기에 크래머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 가시광선을 쬐어 본 것이다. 처음 빨강광선은 실패했다. 주황이나 노랑 그리고 초록도 실패했다. 그가 파랑색 광선을 아이에게 쪼였을 때 황달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흥분하여 이런 사실을 의학계에 발표하였고 그 후로 신생아 황달은 파란색 광선이 나오는 인큐베이터에서 치료하게 되었다. 크레머는 실험을 통해 파란색 광선이 황달을 치료하는 줄을 알아냈어도 왜 파란색 광선이 황달을 치료할까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인도인들이 황달에 결렸을 때 벌거벗긴 채로 거적위에 놓은 이유는 바로 하늘의 파란색에 피부를 노출시키고자 한 것이다. 본래 황달이란 병은 간에서 생산되는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내려가 소화 작용을 거처 대변으로 버려져야 하는데 신생아들은 간 기능이상으로 쓸개즙이 역류하여 심장으로 들어가 빨간 피와 섞이게 되어 황색을 띤 혈액이 흐르게 되어 몸과 얼굴 손과 발이황색이 되는 질환이다. 그러기에 간 기능을 활성화만 시키면 쉽게 치료될 수 있는 병이다. 하여 파란 하늘에 피부를 노출시켜 인체 속의 파란색의 색소체인 크립토크롬으로 하여금 파란색을 수용하게 하여 간을 좋게 한 것이다. 크레머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하여 오늘날 전 세계의 신생아 병동에선 파란색 광선의 인큐베이터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파란색 광선은 신진대사를 증대시키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성장을 촉진하고 심장운동을 느리게 하며, 강장제 역할을 한다. 파란색은 방부제 성질이 있어 근육과 혈관을 축소시키고, 염증을 완화하고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파란색은 혈액순환에도 영향을 주어 파란 광선을 쓰면 흥분을 가라앉혀 열을 동반한 증상이나 빠른 맥박, 고혈압 등의 증상에 적용하면 효과가 있다. 편두통, 뇌막염, 불면증 등의 증상도 파란색을 이용하면 편해질 수 있다. 1970년대에 유행한 청바지는 바로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색이었다.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눈에 밟히는 청색 블루진을 통하여 사람들은 휴식과 긴장 완화를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어, 스트레스에서 오는 분노와 열을 다스릴 수 있었다. 청바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보수적인 기성세대도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색이나 감색의 옷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정장색은 대개가 청색, 즉 파란색 계통이다. 요즘 대학입시나 취업에는 면접과 구술능력을 당락의 기준으로 삼는다. 걱정하지 말고 파란색 옷을 입고 목의 기운을 북돋우면 마음이 평온하고 긴장감이 없어져 조리 있게 면접에 응할 수가 있다. 파란색은 빨간색(팽창과 활력)과는 상반된 작용을 하여 냉각, 수축 그리고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체중감량이 필요한 사람은 음식을 파란색 그릇에 담아 먹으면 좋다. 귀족들이 청자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파란색은 식욕을 낮추고, 소식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빨간색 음식은 먹음직스러운 반면, 파란색은 왠지 차가워 잘 당기지 않고 덜 먹게 되어 마음과 영혼을 고요하게 한다. 접하기 쉬운 파란색 음식으로는 블루베리, 푸른 자두,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가 있으며, 이것들은 간 기능의 회복과 목의 기능에 좋다. 한편 목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보석을 쓰는 것도 좋다. 사파이어나 터키석 등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면 심신이 안정되고 불면이 해소되며 목 질환이 치유된다. 일반적으로 사파이어는 9월의 탄생석이며, 충성심과 믿음을 상징하며 사랑과 그리움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채취하기 어려운 귀한 색으로 왕을 치장하는 보석에 이용되거나 고위 성직자의 반지로 사용되었다. 영국 왕가의 선호 품으로 앤 공주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약혼반지에 장식되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약혼반지로 많이 쓰인다. 사파이어를 목걸이나 브로치를 만들어 목에 걸거나 가슴에 장식하면 목 부위의 질환들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심리적으로 사파이어는 하늘을 상징하는 돌로 통하므로 여성이 남아를 쉽게 잉태 할 수 있다고 도 알려져 있다. 파란색 가방이나 스카프 등의 소품도 같은 효과를 준다.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가급적 이런 파란 칼라로 자신을 코디하는 것이 필요하다. 파란색 힐링 명상-나의 존재는 하늘의 것입니다.
한 사공이 배로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다 떠밀려 내려오는 작은 빈 배와 부딪쳤다. 그가 비록 성격이 난폭한 사람일지라도 배가 비어 있으면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사공은 그에게 무슨 말인가 했을 것이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고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이런 분 냄은 배 안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배에 아무도 없었다면 사공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자기의 노를 다시 저었을 것이다. 사공이 자신이 타고 가는 자신의 배를 비울 수만 있다면 빈 배처럼 사공이 자신의 인생의 배를 띄운다면 아무도 그 사공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 사공에게 분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란색은 분노를 조절해 준다. 그러니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또는 하늘을 시각화하여 생각하면서 파란색을 가까이 하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또한 파란색 명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신의 신성을 실현하기 위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파란색 힐링 명상 시에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단순하고 명료하고 어떤 것에 집착이 없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명상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가 오면 그것을 내팽개쳐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길들여진 것들과 익숙한 것들 그리고 습관들 철학과 종교 그 모든 것들이 장난감에 불과하다. 또한 조직에서 팀을 잘 이끌고 지도하여야 할 때에는 파란색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광경을 시각화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3초 정도 멈추고는 “나는 하늘의 힘을 받아 조직하는 능력이 있고 지도력이 있다.” 라고 확언한다. 파란색 힐링 명상 시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악은 공간예술이고 공간은 하늘에 속하기에 거의 대부분 파랑색과 공명한다. 마룻바닥이나 소파에 편하게 누워 몸의 각 부위의 긴장을 풀어준다. 특히 목을 이리 저리 좌우 전후로 움직이고 두 눈과 귀를 잘 문질러 준다. 그런 다음 음악을 틀고는 파란색 광선이 자신의 목 부위를 감사고 있다고 시각화하면서 조용히 호흡을 조절하면 좋다. 땅에 쌓아두는 것은 모두 썩지만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모두 보물이 된다. 그 보물의 이름은 사파이어! 하늘이 인간의 신성한 삶을 위해 땅에 뿌려놓은 보석이다. 이 사파이어를 차거나 보면서 명상을 해도 아주 좋다. Healing Blue Color Tip 1. 자신 만의 기도문 격언 등을 만들어 항시 외운다. 2. 파란색 하늘을 자주 놀려다 보며 하늘의 도움을 요청한다. 3. 기침 감기를 비롯한 목질환일 때는 반드시 파란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다. 4. 다이어트 시에는 파란색 식기와 식탁보를 늘 가까이 하여 식욕을 조절한다. 5. 불면증일 때는 파란색 잠옷과 파란색 조명을 활용하면서 파란색 힐링명상을 한다. 6. 목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파란색 물병을 만들어 물을 담아놓고 햇빛에 3-4시간 노출 후에 마신다. 7. 갑상선 이상일 때는 파란색 터키석이나 사파이어를 목걸이로 착용하면 도움이 된다. 8. 면접시험에는 옅은 파란색 와이셔츠에 진한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시험에 응한다.
<글 : 박광수 교수> - 전)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 전)부산 카톨릭 간호대학원 외래교수 - 전)대전대학교뷰티건강학과 외래교수 - 전)장로회 자연치유 선교대학원 외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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