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칼럼10] 남색의 심리학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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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의 심리학] 남색이 과하면 위험하다.
남색의 기운이 부조화가 되어 미간이 막히면 깊은 우울증으로 고통 받거나 지나치게 내성적이게 된다. 자기표현이 힘들어져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피하고 고독감과 분리 감을 느끼며, 극단적으로 자기 불신에 빠지거나 아니면 자기 이외의 것에 완전히 무관심해지거나 정반대로 편집광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매사를 극단적으로 이상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이상대로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심하게 낙담한다. 그리하여 환청과 환시로 인해 죽음의 공포에 내몰리게 된다.
공포의 화가 뭉크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 시달린 화가가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가 바로 그다. 표현주의 화가인 뭉크는 <절규>라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데 1893년 이 그림을 그리기 전 뭉크는 그가 본 환각을 일기에 다름과 같이 적고 있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 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오르드에 걸린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 때 자연을 절규 1893, (노르웨이명; Der Schrei, 영어 번역명; The Scream, The Cry) 가로지르며 울리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뭉크의 ‘절규’를 한번 본 사람은 결코 그 강렬한 인상을 쉽사리 잊지 못한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암청색 물결, 다리 난간 아래로 보이는 회오리치며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불길하고 날카로운 비명소리.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면에 있는 자아가 죽음이라는 환상에 놀라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온 몸을 전율하게 한다.
뭉크는 평생토록 죽음의 망상에 시달렸다. 그의 어머니는 뭉크가 겨우 다섯 살이 되던 해 결핵으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은 집안에 암흑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절망과 비극은 다시 뭉크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뭉크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누나 소피에가 결핵으로 죽었고 얼마 후 동생 라우라마저 착란 증세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무지갯빛으로 빛나야할 유년시절이 소년 뭉크에게 있어서는 죽음과 절망의 공포가 뒤 덮은 것이다. 제 3의 눈으로 암흑과 죽음의 세상을 체험한 것이다.
뭉크는 죽음의 공포를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될 죽음의 공포에 대비하라는 외침을 세상의 벽에 붙인 것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인간을 물질로 보는 사람들은 목숨이 끝나면 다음 세상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으로 하나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이를 깨달을 수 있을까? 기러기와 깨달음 인간보다 더 깨달은 존재들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조류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암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을 날며 스스로 방향을 잡아 수만 km에 달하는 목적지에 닿기 때문이다. 초인적 인간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로이다. 이런 조류들 중에 기러기는 단연코 돋보이는 존재이다.
기러기는 어떻게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은 체내시계(體內時計)에 의하여 시각을 알고 태양의 방위와 별자리의 위치를 이용하여 본능적으로 이동해야할 행로를 안다고 한다. 바로 송과체가 빛의 세기를 인지함으로 위치를 파악하여 방향을 잡는 것이다.
기러기는 먼 거리를 날아가는 방법으로 ‘ㅅ자’ 대형을 유지한다. 과학자들은 새들이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면 뒤에 있는 새에게는 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형의 선두에서 나는 기러기가 거친 맞바람을 가르면 뒤따르는 기러기들은 앞서 갈라진 바람의 양력을 이용하여 날아가는데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70%나 더 멀리 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러기는 먼 거리를 비행하다가 간혹 쇠약해지거나 병에 걸린 기러기가 생기면 그 기러기가 속한 가족 또는 동료들은 무리에서 함께 이탈하여 낙오된 기러기를 돌보고, 이후 원기가 회복되면 다시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날지 않고서는 목적지에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기러기의 특성을 깨달아 기러기를 나무로 깎아 놓고 제성(帝星, 紫微星, 北極星)에게 혼인함을 서약하게 하였다.
북극성은 어떤 별인가? 지구의 고향으로 인간으로 비유하면 내면의 얼인 제 3의 눈이다. 그래 혼인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얼과 혼이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북극성에게 혼인을 서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러기처럼 사랑을 약속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입으로 만 맹세하고 지키지 못한다. 미간에너지의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은 모두 헛맹세로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진정한 맹세는 바로 미간 즉 지성소에서 올리는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할 때 신은 선지자를 만나 확신과 약속을 들려준다. 그래 빛이 오는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다.
한 소년이 새벽에 기도하다가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신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다. 가난을 몸소 겪고 있던 그 소년은 주일 예배에 드릴 헌금이 없어 자신의 두발을 헌금바구니에 담았다. 주일학교 교사로부터 무슨 짓이냐는 핀잔을 들은 그는 ‘헌금이 없어서 제 몸을 드리려고 했습니다.’하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후 그는 1883년 11월 목사안수를 받고 인도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벽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왜 너는 조선으로 가지 않느냐?”
그날 그는 인도에서 조선으로 선교지를 전환했다. 그의 이름은 언더우드! 1884년 7월 28일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의하여 한국과 서양의 문화를 연결한 한국 최초의 선교사이었다.
언더우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조선말을 배우던 중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 복음서를 발견한다. 언더우드는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간 조선에 대해 감탄한다. 그리하여 언더우드가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 해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이었다. 언더우드는 갑판위에서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를 드렸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고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고 있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선의 내심이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 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도 예배드릴 예배당이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의 기도대로 이제 한국은 미망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국가로 도약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풍요로워 겼으나 내면으로 볼 때는 오히려 더욱 이기적이 되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인정은 온데간데없고 남의 손에 들은 콩도 빼앗을 태세이다. 얼을 찾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겉모양만 가꾸기에 전념한다. 어느 시기에는 안 그랬을까 만은 요즘은 더욱 난세이다.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숭고한 선조의 얼을 깨워야 하지 않을까?
<글 : 박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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